1970년대 명동 황제 '신상사' 신상현의 마지막 이야기: 한국 1세대 조폭

반응형

1970년대 명동을 지배했던 '신상사' 신상현의 삶과 죽음, 그의 발인식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한국 1세대 조폭 역사를 살펴봅니다. 그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며, 한국 사회에 남긴 영향을 조명합니다.

신상현-별세-빈소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신상현 씨의 빈소

대한민국 1대 조폭:신상사파 신성현(신상파) 별세 

2024년 8월 12일 한국의 1세대 조폭 신성현 '신상사파' 별세

2024년 8월 12일, 한국의 1대 조직 폭력 범죄 역사에서 큰 자취를 남긴 신상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신상사'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195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명동을 중심으로 한국의 암흑가를 지배했던 인물로, 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에 등장하는 '오상사'의 인물은 실제  서울의 주먹황제였던 신상현을 모티브 한 실존인물입니다. 그의 삶은 한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깁니다. 이번 글에서는 신상현의 삶과 그의 죽음이 남긴 의미를 통해 한국 조직범죄의 흑역사를 다시 한번 되돌아봅니다.

SBS-대하드라마-야인시대-오상사
드라마 야인시대의 '오상사'의 실존인물 인 신상현

신상현의 출생 배경 :신상사파의 탄생과 영향력 

1932년 서울 종로구 관수동에서 태어난 신상현은 숭실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한 후, 1949년 육군에 입대해 지리산 공비 토벌 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1953년 대구 특무부대에서 1등 상사로 전역한 그는 '신상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고, 이듬해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와 명동 중앙극장 옆을 자신의 근거지로 삼았습니다. 

야인시대 김두한과 신상사의 명동 시절

명동-시공관-이화룡
이화룡 SBS드라마 야인시대 장면

당시 명동은 우미관의 김두한, 명동 시공관의 이화룡, 그리고 종로파의 이정재가 삼각 구도를 이루며 세력을 확장하던 곳이었으며, 신상현은 독자적인 조직을 꾸리면서 이화룡의 명동연합에 느슨하게 결합하게 되었습니다. 신상사의 이러한 배경은 당시 서울의 조폭들이 명동을 중심으로 세력을 다투던 야인시대의 중요한 일면을 보여줍니다.

SBS-대하드라마-김두한
야인시대 김두한

1954년, 신상현은 대구에서 서울로 상경하며 명동 중앙극장 옆에 자신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1960년대 초반, 그는 '충정로 도끼 사건'으로 옥살이를 하기도 했지만, 1970년대에는 명동을 완전히 장악하며 '명동 황제'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범죄 조직은 일본 야쿠자와 협력해 관광호텔 카지노를 운영하며 막대한 이익을 챙겼습니다. 

문화적 영향: 신상사의 삶과 대중 매체

SBS-대하드라마-야인시대
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

신상사의 이야기는 여러 책과 다큐멘터리, 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 및 영화의 소재가 되며 한국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삶은 범죄 세계의 냉혹함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로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특히 그의 생애는 한국 범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시라소니-이성순
시라소니 실제 실존인물 이성순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의 암흑가를 지배한 강력한 조직으로, 그의 범죄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신상현 씨는 195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약 40년 동안 명동을 주름잡으며 활동한 1세대 조폭으로, 김두한, 이정재, 스라소니(본명 이성순)와 함께 대한민국 조폭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손꼽혔습니다. 그의 영향력은 생존한 조폭들 중에서도 최고 실세로 평가될 정도로 컸습니다.

신상사의 죽음은 단순한 범죄자의 종말을 넘어서,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한 페이지를 상기시키는 사건으로 남았습니다. 그의 발인식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은 그가 한국 사회에 남긴 영향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90대의 조폭 A 씨의 조문

원로조폭
신씨와 60년을 함께 한 90대 원로 조폭 A씨

신상현 씨와 60년 이상의 시간을 함께한 90대 조폭 A 씨는 휠체어에 앉아 신 씨의 관이 운구차에 실리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A 씨는 다른 노인 조폭들에게 "이제 우리의 차례가 올 것"이라며 "한 시대가 이렇게 저물어 가는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이태원동, 상계동, 영등포구 등 서울 각지의 조폭 두목들도 모여 신 씨의 마지막 길을 함께 배웅했습니다.

발인식: 조폭들의 마지막 경례

신상현-발인식
12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신상현 씨의 유족과 최측근 조폭들이 신 씨를 애도하며, 최모 씨가 평소에도 신 씨에게 자주 불러줬던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를 부르고 있는 모습

2024년 8월 12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신상현의 발인식은 그가 한국 범죄사에 남긴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 발인식에는 200여 명의 조폭들이 도열해 고개를 숙이며 신상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습니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의 관이 운구차에 실리는 순간 조폭들은 경의를 표하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My Way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
그리고 이제 끝이 가까워졌습니다
And now, the end is near
그래서 나는 마지막 막에 직면해 있다
And so I face the final curtain
친구야, 분명히 말할게
My friend, I'll say it clear
나는 내 사건을 진술할 것이다.
나는 그것에 대해 확신한다.
I'll state my case, of which I'm certain
난 충만한 삶을 살았어
I've lived a life that's full
나는 고속도로를 모두 여행했다
. I traveled each and every highway
그리고 이것보다 더, 훨씬 더
And more, much more than this
난 내 방식대로 했어
I did it my way
죄송합니다. 몇 가지를 겪었습니다.
Regrets, I've had a few
하지만 다시 언급하기에는 너무 적습니다.
But then again, too few to mention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
I did what I had to do
그리고 예외 없이 그것을 보았습니다.
And saw it through without exemption
나는 차트에 있는 각각의 코스를 계획했다.
I planned each charted course
샛길을 따라가는 각 조심스러운 발걸음
Each careful step along the byway
그리고 이것보다 더, 훨씬 더
And more, much more than this
난 내 방식대로 했어
I did it my way
그래, 그런 때도 있었지, 너도 알고 있었을 거라 확신해
Yes, there were times, I'm sure you knew
씹을 수 없을 만큼 많이 물어뜯었을 때
When I bit off more than I could chew
하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의심이 생겼을 때
But through it all, when there was doubt
다 먹고 뱉어냈어요

I ate it up and spit it out
모든 걸 마주하고 당당하게 일어섰어
I faced it all, and I stood tall
그리고 내 방식대로 했어
And did it my way
사랑했고, 웃고 울었다
I've loved, I've laughed and cried
난 배불렀어, 내 몫은 잃어버렸어
I've had my fill, my share of losing
그리고 이제 눈물이 가라앉으면서
And now, as tears subside
나는 그 모든 것이 너무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I find it all so amusing
내가 그 짓을 다 했다고 생각하면
To think I did all that
그리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And may I say, not in a shy way
아, 아냐, 아, 아냐, 난 아니야
Oh, no, oh, no, not me
난 내 방식대로 했어
I did it my way
사람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얻었습니까?
For what is a man, what has he got?
그 자신이 아니라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다.
If not himself, then he has naught
그가 진심으로 느끼는 것을 말하려면
To say the things he truly feels
무릎 꿇은 자의 말이 아니라
And not the words of one who kneels
기록은 내가 타격을 입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The record shows I took the blows
그리고 내 방식대로 했어 And did it my way
응, 내 방식이었어

언론보도로 인한 장례행렬 계획 취소

서울아산병원에서 신상현 씨의 발인식 중 운구차를 둘러싼 200여 명의 조폭들, 이들 대부분은 신 씨의 최측근이다

장례위원장 홍인수 씨는 신상현 씨의 발인식에 블랙 세단 100대를 동원해 장례 행렬을 계획했으나, 언론 보도로 인해 경찰이 이를 막았다며 계획을 취소했다고 전했습니다. 대신 조폭들은 각자의 차량을 이용해 신 씨의 마지막 길을 배웅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시민들의 불안을 최소화하려는 결정으로, 경찰과 장례 측이 협력하여 조율한 결과입니다.

빈소에서 목격된 장면: 깊은 인사와 각계 인사들의 조화

신상현-빈소
발인식을 앞두고 빈소 앞 복도에 검은 양복을 입은 다양한 연령대의 남성들이 모여있는 모습.

빈소 앞에서 종종 정장을 입은 건장한 체구의 남성들이 허리를 깊이 굽혀 "형님, 오셨습니까"라며 공손히 인사하는 모습이 포착되었습니다. 인사를 받은 이들은 반갑게 악수를 나누며 서로 "어디 식구냐"라고 물어보는 대화도 오갔습니다. 또한, 빈소 앞에는 가수 설운도, 태진아 씨 등 여러 연예인과 각계 인사들이 보낸 근조화환이 100여 개나 줄지어 있어 장례식장의 분위기를 더욱 엄숙하게 만들었습니다.

화환
빈소앞에 길게 늘어저 있는 화환들

이날 장례식에는 이형석 쌍방울 대표이사, 허경영 국가혁명당 명예대표, 원로 연예인 친목회 상록회의 회장 김명호 씨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해 신상사의 마지막을 함께 했습니다. 그의 최측근 조폭들은 마지막까지 그를 지키며 한 시대의 종말을 함께 했습니다. 서울시 오세훈 시장이 조기를 보냈다 https://webhp.co.kr/146는 이유로 논란이 있었습니다.

 

신상현의 별세 및 논란 신상사파: 명동을 지배한 주먹들의 전설 계보

신상현의 별세와 함께 조명된 신상사파는 1950년대부터 명동을 지배하며 한국 주먹계의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신상현의 영향력과 신상사파의 계보, 그리고 그의 죽음이 불러온 논란을 통해 한

webhp.co.kr

결론

신상현의 삶과 죽음은 한국 현대사에서 범죄와 권력의 복잡한 관계를 상징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범죄자의 전기라기보다, 한국 사회가 겪어온 변화를 반영하는 중요한 역사적 기록입니다. 이제 그의 죽음으로 인해 하나의 시대가 막을 내렸지만, 그의 영향력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관련링크

마이웨이 들으며 떠난 '신상사'... 조폭 200명 일제히 고개 숙여

 

마이웨이 들으며 떠난 ‘신상사’... 조폭 200명 일제히 고개 숙여

마이웨이 들으며 떠난 신상사... 조폭 200명 일제히 고개 숙여

www.chosun.com

 

이번 글을 통해 우리는 신상사가 남긴 유산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한국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이며,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기고 있습니다.






반응형